레트로 플레이 : 복고풍을 담은 디자인, 뉴트로 갬성을 담다.

을지로 감성이라는 말, 들어는 봤나?

몇년 전부터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 연남동, 중구 만리재길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식점 간판이 하나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서울 뿐만이 아니라 어딘가 옛마을, 옛길에 생겨난 음식점, 카페들의 간판들이 하나둘씩 복고풍을 담은 옛날 간판의 모습을 띄기 시작한 거다. 예를 들어 <경성돈까스>처럼 아예 가게의 이름에서 어떤 복고적 지향성을 띄지 않아도, 굳이 서울의 인사동, 북촌마을처럼 전통 마을의 색채 때문에 한글 간판을 걸지 않아도 될 곳에서 이른바 새로운 간판의 복고풍이 일기 시작한 거다.

어디 그뿐인가? 여러 기업들의 마케팅과 브랜딩에도 뉴트로(과거의 복고풍을 새롭게 재해석, 재가공하는 움직임)의 색채가 짙어졌다. 과거에는 추억의 대상물들을 마케팅의 대상물로 활용하기만 했다면 이제 마케팅의 방식 뿐만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행사, 이벤트의 포스터, 웹자보들의 디자인 컨셉에 전부 레트로를 담은 사례는 언제부턴가 부쩍 늘었다.

굳이 자사의 제품, 서비스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도 뉴트로 마케팅을 펼친 경우도 많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는 이벤트 콘텐츠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이벤트 진행방식은 물론 행사운영 영을 아예 ‘레트로’ 스럽게 바꾸기도 한다.  타겟 소비자층을 50대 이상의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맞추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근래의 주요 소비자 연령층은 2030세대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움텄던 시기에 태어났을 뿐더러 인터넷과 미디어의 격변기 속에서 성장했으며 이들이 추억하는 아날로그의 시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었거나 있었어도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광고, 홍보, 디자인의 전환이 거세다. 왜일까? 기업 브랜드 홍보 서포터즈 활동을 하고 있거나 평소 문화활동에 관심이 많거나 트렌드에 민감한 20대 대학생, 직장인들에게 물었다. 이들의 주된 답변은 이렇다.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도 않았던 시대예요. 레트로의 시대는요. 1970년대의 포크음악, 팝송, 1960년대의 미스코리아, 1950년대의 댄스클럽 같은 것을 인터넷으로 접하면 정말 우리나라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어요. 신기하죠. 그리고 응답하라 1988, 1994 같은 드라마의 영향도 커요.

지금보다 촌스럽고, 한참 뒤떨어져 보이는 그때가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의 모습보다 훨씬 더 정겹고 행복해 보이거든요. 또다른 한켠의 젊은이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굳이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흘러간 옛시대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모습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늘날에 경험할 수 없는 옛날의 정서가 재미있고 독특할 뿐이에요. 지금은 세대 격차가 엄청나게 많이 나는 중년과 노년의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들과 비슷한 어찌보면 더 즐겁고 행복했던 그 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모름지기 어떤 짧은 ‘신화’처럼 느껴지는거예요.”

이렇다보니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없었던 어떤 시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레트로 플레이’에 임한다. 작은 모임, 미팅이 있으면 포스터는 쌩뚱맞게(?)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의 입간판 스타일이다. 간판은 1960년대 서울 종로의 시장통 입간판의 스타일을 넣는다. 1970년대 전국 초등학생들이 보던 철수와 영희의 교과서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디서 누가 촉발했을지 그 최초의 시작을 가늠하기는 힘드나 지금은 너나할 것 없이 이른바 레트로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서울의 여러 도시재생 지역의 문화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시민 활동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빠른 혁신과 개발의 흐름을 거부하는 일종의 슬로우 이니셔티브의 단적인 예라고 진단한다. 2020년의 오늘을 살고 있는 중년층과 노년층들이 자신들의 의식속에 자리잡은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고 그 자체를 향유하려 한다면,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흘러간 과거의 때를 향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같음’을 찾고 ‘다름’의 미학을 통해 새로운 플레이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시간을 내서 서울과 경기, 주요 도시의 곳곳에 있는 ‘걷고 싶은 거리’의 면면을 살펴보기 바란다. 서울의 북촌마을, 서촌마을, 종로구 익선동 같은 곳 뿐만이 아니다. 부산 감천마을, 군산 적산가옥촌 등 전국에만 수백개가 넘는, 빠르게 뉴트로 디자인이 자리잡고 있는 거리 곳곳을 살펴보면 과거 수십년 전에 있었을 법한 가게 간판과 선전물들이 여러분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으리.

레트로 디자인은 이미 시작된 거다. 19세기 말 서부 카우보이 시대와 1960년대 제임스딘, 엘비스 프리슬리로 대표되는 풍요의 시대를 추억하는 미국의 레트로와는 사뭇 다르다. 오늘을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레트로에 자신의 욕구와 경험을 새롭게 담아내고 있다. 빠른 경제성장과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 급격한 미디어의 변화 속에서 자리잡은 한국의 독특한 레트로 문화다. 단지 옛물건을 사고 파는 거리 장터에서 중고품을 구매하거나 수십년 전의 동창생들을 밤새도록 만나는 레트로 점핑(Jumping to Retro)가 아니다. 오늘의 감성에 레트로의 느낌과 결을 담아 혼합하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이른바 레트로케미(Retro-chem) , 뉴트로필(New-tro) ‘뉴트로갬성’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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